뉴칼레도니아 역사

관리자1 2017-03-17 (금) 18:46 6개월전 66  
<선사시대>

뉴칼레도니아는 빙하기 이전에 대륙에 붙어 있었으나,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바다에 고립된 그랑드 떼르섬이 탄생했습니다.(약 1만 년 전)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은 암각화, 라피타식 토기(BC 2000년) 등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 식민지화 이전>

현재의 멜라네시아계 사람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카누(Pirogue, 피로그)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이주해 온 것 같습니다. 각 부락 마다 자급자족 경제가 이뤄졌고, 곧이어 서방에서 폴리네시아인도 이주해 왔습니다. 따라서 관습도 다양하고 언어 또한 약 27가지 이상의 방언이 있다고 합니다



<서양인에 의한 발견>

1774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칼레도니아를 발견했습니다. 원래 뉴칼레도니아라는 이름은 제임스 쿡이 그랑드 떼르섬의 산맥을 보고, 영국 북부의 스코틀랜드 지방의 풍경과 닮았다고 하여 붙인 것입니다.(스코틀랜드의 로마 시대 이름이 칼레도니아였다고 합니다.) “일데뺑”도 제임스 쿡 선장이 소나무가 많은 쿠니에(Kunié)섬에 붙인 이름입니다. 다음에 방문한 것이 루이 16세의 명을 받은 라뻬루즈 백작(La comte de Lapérouse)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카톨릭 선교사가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했습니다.

1853년, 나폴레옹 3세가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령이라고 선언하여 같은 해 9월 24일에 페브리에 데포앵뜨(Febvrier Despointes) 해군 대장이 그랑드 떼르 북부의 발라드(Balade)에 3색기를 세웠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현재 9월 24일은 뉴칼레도니아의 국경일입니다



<정치범의 유형지>>

프랑스는 식민지가 된 뉴칼레도니아에 정치범들을 보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4개월 넘게 항해해야 했으므로, 뉴칼레도니아는 세계의 끝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1871년, 파리 꼬뮌이 발발했을 때는 약 4천명이 유배되어 대부분이 일데뺑에 유형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약 3만명 정도가 국외 추방 및 유형자로 뉴칼레도니아에 송환되었습니다. 1887년 이 처벌 제도가 폐지된 후에 유형자는 없습니다. 



< 프랑스 해외 영토>

1946년, 뉴칼레도니아는 식민지에서 프랑스 해외 영토로 인정됩니다. 그 결과 인종에 관계없이 뉴칼레도니아 주민은 본국과 동등한 프랑스 국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뉴칼레도니아는 니켈 광업과 관광업, 남태평양이라고 하는 특수한 지방 풍습을 가진 프랑스 공화국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특정 영역의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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